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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anuary 12, 2012

consumption & econ soci

o   Economic sociology has mainly focused on the producer-side (ex. corporations, business organizations, interlocking directorates, financial markets, industrial structure, and actors in such organizations, etc.). Zelizer (2005) said “Indeed, economic sociology grew up concentrating o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rather than consumption” (p.336). Balance is needed.
o   Consumption is another big area where intimacy meets economy (ex. Miller) or where economic behavior is nested in our everyday life, which means that consumption is a medium for connecting the intimate world (ex. family, intimate relations, culture, meaning, identity, taste and so on) and economic action.
o   The potential link between economic sociology and political sociology: Mass consumption, consumption society and the spread of consumerism may foster or hinder democracy. Also consumerism may lead to neoliberal ideology. (ex. “There is perceived ideological fit between the self-managing, enterprising, choosing self and the model citizen of neoliberal societies who shoulders the responsibility for maintaining social order through his or her “good” choices.” (Zukin and Maguire 2004)) (“expressive selfhood”?)
o   The potential link between economic sociology and cultural sociology: How culture affects economy and economy affects culture. Academic discussion on modernity and post-modernity also could be included here.

Sunday, January 8, 2012

노동문제와 경제체제

어떠한 종류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정치경제가 돌아가느냐와
노동자가 임금, 노동, 및 노사관리에 있어서 처하게 되는 부당함, 부정의와 고통은
물론 연관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적당한 수준의 복지국가/사민주의적 정책을 주장한다고 하면
일부(?) 좌파 이론가/활동가/운동가들은 그것을 열심히 비판하는데,
(김규항, 박노자 류)

결국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노동자 해방'이라는게
1) '적정한/정당한 수준의 봉급을 받고 좀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복지국가/사민주의 국가를 추구하고 정관경 유착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권리가
정치경제적으로 짓밟혀지는걸 제도적으로 막도록 노력하는 방식이 과연 정말로
옳지 않은 방향인건지 묻고 싶어지며
2) 좀 더 래디컬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별로 동감해주고 싶지 않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a. 노동문제의 제반 문제들을
b.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인 것으로 혼동하는데서 나오는 래디컬한 사상이 있는데,
b는 a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므로 b를 개선/개량시켜 a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틀리지 않다.

물론 b를 충분조건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좌절감은 이해한다.
다만 그것 때문에 현실 정치의 투쟁 영역에서 이상주의적으로 나가다보면 문제를
해결하기 더 힘들어진다고 본다.

(나도 이상주의는 동경하나, Barney Frank의 말처럼, 이상주의는 구체적인
현실적 문제 - 집짓고, 복지 프로그램을 통과시키고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라도), 등등-
의 해결방안을 현실화시키지 못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뿐이다.
시베리아 횡단을 해야하는데, 비행기가 없으면 마을버스라도 타고 가야한다. 시간맞춰
버스타러 가야한다. 이상주의는 버스를 놓친다.)

그들이 그들의 사상에 대한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실용적 점진주의에 대한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재미

"단식이니 길거리농성이니 투신이니 삼보일배니 하는 식의 자학적인 운동은 죄송하지만 그만하고 시위 자체가 축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나꼼수와 내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 공지영 트윗


요즘 재미가 대세인데 (정봉주 등), 너무 비판적이거나 삐딱하게 볼 필요는 없다. 이런게 대두가 되는 건 기존 한국 사회의 분위기 상 어느 정도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매일 같이 재미와 즐기는 것을 강조하는 것 등도 보다 mature한 사회로 가는 중간 과정이라 생각됨. 그럼에도 공지영의 저런 말은 아주 불쾌함.

Wednesday, December 28, 2011

방법론적 개인주의, 복잡계

등이 사회학의 이론적 토대를 끌고 나갈 것 같지는 않다. 인지심리적 메커니즘들을 고려하지 않는 한.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illusion of difference, two-mode network of actor-ideas, ignoring cognitive mechanism들에 (앞의 두 개는 내 용어들임;;) 비추어봤을 때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비현실적 이론.

Monday, December 26, 2011

from father Oh

"나는 어떠한 가난한 이들의 집에 들어가도 함께 편하게 머물 수 있는가? 어떤 가난한 이들도 내 집에 들어와서 편하게 머물 수 있는가?" -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이들의 삶의 자리에서 20년 동안 선교사로 사셨던 고 브랙클리 신부는 사회정의의 첫걸음으로 이 질문을 던지며, 당신도 힘들지만 노력하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Dean Brackly S.J., "The Call to Discernment in Troubled Times" (2004) 

Thursday, December 22, 2011

depreciation and humor

should be always accompanied when knowledge is displayed

Wednesday, December 21, 2011

Saturday, September 10, 2011

지식과 아이덴터티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한 사람이 거의 전분야에 걸쳐 박식한 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언젠부턴가 그런 것은 완전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작은 분야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지식을 마스터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이런 생각이 연장되다가 결국 지식에 대한 허무주의까지로도 연결되었는데,

요즘에 든 다른 생각은,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지식이 한 사람 안에 축적되냐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지식과 정보들이 서로 체계적인 연결고리를 이루며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식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쌓여지는 것. 많은 지식이 유리한 것은 풍부한, 유기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좋기 때문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대단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그런 지식, 생각, 정보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형태로 얼개를 이루어 스토리를 형성하느냐이다.

---

on another note, 요즘 사회학에서 많이 연구하는 것이 identity의 문제인데,
(지식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도 결국 아이덴터티의 문제로 연결되긴 하지만,
감정상태의 조합을 바탕으로한 아이덴터티도 현실에서 개인의 아이덴터티를
구성하는 중요한 핵인것 같다. 연령, 성별, 소득, 직업 등등만이 아니라...
그런 아이덴터티의 이미지는 본인 스스로도 소비하고 타인에 의해서도 소비된다.


현대는 이런, (지식-스토리) + (감정의 스타일-아이덴터티)의 조합이 중요하다.

역설

정치 부패 인덱스에서 세계 39위인 나라.
정치가 깨끗해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깨끗한 사람이 정치하겠다고 하면 '정치는 아무나 하나' '정치판 가서 물들면...'이라고 하는 사고 방식.

비상식적 상황을 상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면서도 비상식적 상황의 모순들에 너무 쉽게 자기 마음을 내놓는 사고 방식.

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 아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넷 정도 아는 사람들을 잡아끌어내리고 물어뜯어서 둘이나 하나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만족하는 사고방식.

등등

이런 한국적 실상이 싫지만 전에 쓴 글대로....

Friday, September 9, 2011

한국이 싫다면...

별로 사회학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어떤 모습들이 싫다면,

그것은 한국의 구조나 문화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추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전파되고, 공감을 얻으며, 비슷한 마음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가진 마음과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 대상을 말로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공명을 울린다. 현재의 마음을 초월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요원해질 뿐이다.

단상...

1. 지식인이란...
자신의 일을 겸손한 자세로 성실하게, 참을성 있게 하면서 거기에
다른 사람을 위하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더 짧은 버젼으로 말하면, 자신의 일을 윤리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
그것을 통해 바닥이 닦여진 사람이 사회적으로도 무언가 할 말이 있고
말할 자격이 있다.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은 학위나 교양이나 직업이
주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 on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Intellectual)


2. 다른 사람에 대한 말...
현재 우리 사회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등장해봐야 떼로 달려들어
끊임없이 물어뜯고 할퀴고 잡아 끌어내리는 상황으로 되어있다.
그걸 떠나서 남에 대한 평가는 쉴새 없이 이루어지고, 남 욕하고 남 험담하고
안좋게 보고 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학자들은 거기에 진화론적인 배경이 있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무조건 "나는 잘 모르지만"이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5514.html) 기본이어야 하고,
그 사람 앞에서도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떳떳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추측'은 참 부정확하더라고요."

부끄러움이 없는 추측이 아니라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추측과 험담은
독이 되어 공기중에 날아다니면서 사람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Monday, September 5, 2011

이념

이념적 성향, 포지션.... 이런 것의 유용한 측면, 전략적 필요성 또한 있지만, 어떠한 종류든간에 '믿음'이라는 것에 긍정적이지 않은 나는 그것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편하다.

결국 이념이라는 것은 social cognition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의 생성/유지가 group loyalty와 cognitive efficiency라는 두 가지 메커니즘에 의해 상당부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파악하고 바꾸는 것에 저 두가지는 득보다 실이 많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의심'과, 의심을 최대한으로 잠재울 수 있는 자명한 (self-evident) 사회적 공리들(social axioms)의 체계에 기대는 것이 더 맞다고 보여진다.

Sunday, September 4, 2011

이반 카라마조프

...

신은 인간 세상의 정의와 고통의 문제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자연법칙 또한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성격을 가졌다.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정의는 도태된다.

안철수

안철수의 시장 출마와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들이 많다.
정작 본인은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은데... 검증되지 않은 루머들도 팩트인 것 처럼
전파가 되고.. (특히 윤여준과의 관계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대단히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보여지고, 행정 경험이 없다거나 정치판에서의 세나 경험이 없다는 것으로 비판하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반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런 논리라면 안철수는 애시당초 경영자의 길로 가지도 말았어야 한다. 책보고 공부밖에 안한 얼굴 하얀 백면서생의 의사가 어떻게 그 험한 중소기업 사장의 길로 가느냐고 뜯어말렸어야 한다.)

때로는 한국에 진보와 보수의 논의와 논쟁들이 사실 문제의 표면만을 긁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 밑은 비상식과, 부패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사집단들이 몸통을 이루고 있는데... 그래서 속칭 '진보'가 집권한다고 해서 어떤 특정 문제가 크게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물론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언정...) 어차피 그 다음에 정권을 뺏길 가능성은 매우 크고 그러한 사이클이 영구히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 게임의 핵심인게 맞다. '합리적 보수'는 '합리적 진보'에서도 열렬히 환영할만 하다. 하지만 비상식의 게임에선 보수나 진보나 합리성의 틀 안에서 담론을 키우고 얘기하기가 힘들다. 증오와 배타성을 바탕으로한 싸움만 지속될 뿐... (누가 더 맞고 틀리냐를 떠나...) 물론 승자는 영원히 결정되지 않을 것이고. 실질적인 양당제의 한계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진보진영을 위해서라도 이데올로기 지형이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고 또 필요하다. 안철수가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가는 결국 시간이 보여줄 문제.

다만 시점이 지금이 맞느냐....는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다.




Wednesday, August 24, 2011

민주주의의 적은 민주주의

미국, EU, 한국 모두 정치학자들이 얘기하는 "unequal democracy"의 경향이 나타나는데... 민주주의의 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불평등한 민주주의....라고 얘기하면 좌빨이 되는 현실이 참...;;

Friday, August 19, 2011

상황

시대상황과 학계상황,
두 가지의 상황에 의해 내 공부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좋다면 좋고 아니라면 아닌..

Tuesday, August 16, 2011

무상급식

요즘 트위터에만 들어가면 무상급식 얘기가 하도 많이 있어서 계속 노출이 안될수가 없는데...
예전부터 나의 생각은 (전면)무상급식은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최선책은, (기준이 어찌됐든간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지원하되,
학교에서 학부모가 돈을 어떻게 내고, 애들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거두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그 내용이 철저하게 애들간에는 모를 수 밖에 없도록 원천적으로 정보 채널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학교에 급식비 내는 것도 지로나, 계좌이체나 무통장 입금으로만 진행시키고,
학부모와의 연락도 교사가 애들과의 정기 면담을 통해서 하거나 학부모에게 다이렉트로
연락하고... 적절한 젊은(?) 학부모에 해당되는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는 그 정보가
계속 그 학생이 진학하는 동안 시스템상으로 inherit되도록 해서 애 귀찮게 할 필요가
없게 하도록 하고... 등등.

쩝...;

보수쪽도 좀 머리가 잘 안돌아간다고 생각되는게, 무상급식에 대해 복지망령이니 망국적
포퓰리즘이니 이런식의 반감 일으키는 레토릭을 쓰느니, 현행 체계를 유지하면서
그 부작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을 새롭게 제시하면 되는 것을....쯧쯧

암튼간에 이런 방식이 잘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면,
밥 먹는건 지원해줘야 한다고 본다. ㅆㅂ밥 못먹으면 얼마나 서럽겠나.






Saturday, August 6, 2011

몸과 머리

가끔씩 생각을 너무 많이 할 때나, 특히 글을 쓸때 (영어로)
몸까지 동원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몸도 쑤시고 별로 안좋은 것 같다.
생각은 철저히 머리 끝에서만 미뤄지고 내 몸과는 별개로 빠르게 전개되도록 해야겠다. 별 것도 아닌데 몸으로도 생각하다보면 지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빨리 전개되지도 않는듯.

....



말이 되는 얘긴지는 모르겠으나 저렇게 생각하는게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ㅎ

Monday, August 1, 2011

중심

아주 이타적인 삶을 살다간 두 분에 대한 다큐를 (다시) 보았다. (기본적으로 종교인들이심...)

기가막힌 중심이 있으셨던 분들이었다.

내가 계속 찾고자 하는 것도 그런 중심이다. 그게 없으니 세상 모든 것이,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뿐이라...

Friday, July 29, 2011

이성 vs 믿음

믿음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믿음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은 구분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나의 natural response는,

믿음과 이성의 생리학적 기제를 이해해야 나올 수 있는 대답이라는 것이라는 생각...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 쉽사리 정리하지는 못하겠다.

(지금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책: On Being Certain: Believing You Are Right Even When You're Not)
(저자의 구글 강연)


어쨌든 나의 기본적 stance는, '믿음'이라는게 있고 (혹은 '믿음의 영역') '이성'의 영역이라는게

따로, 우리 바깥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독립적 영역이 아니라,

믿음과 이성적 추론이 서로 다른 생리적, 신경 메커니즘을 통해 머릿속에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과학에서는 조금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사실..

(한완상씨의 인터뷰를 보다 들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