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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20, 2012

[펌] 노무현과 정동영

참여정부탄생의 1등공신은 누구일까?

안희정?

이광재?

문재인?

김두관?

참여정부시절 노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위 네사람이 1등공신?

아니면 지금 국민을 향에 노무현의 적장자라 사기질 치는 유시민?

이들의 이름은 참여정부의 탄생으로 인하여 한국정치사에 거론될 수 있었으며 참여정부의 탄생이

없었으면 이름석자가 아닌 성도 못들어 봤을 인물들이란 점에서 참여정부탄생의 1등공신이 누구

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2년 대선을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참여정부탄생의 1등공신은 당연 정동영이라 말할

것이다.정동영은 당시 민주당의 주류인 동교동계와 맞짱을 떠 정풍운동을 일으켜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방식에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당시로는 한국 정당정치에 정치혁명과 같은 일을 만들어 냈다.

만일 국민경선제가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대세론에 힘입던 이인제가 대의원선출에서 큰 무리없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노무현이나 참여정부 또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인제는 국민참여경선에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를 했으며 당연 자신이 1위를 할 줄 알

았는데 그동안 대권후보계열에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았던 노무현이라는 대권도전 신참에게 광주

에서 철저히 참패를 당했다.그뒤 이인제는 경선후보사퇴를 발표하고 칩거에 들어갔다.그의 속내는

분명 자신이 경선에서 중도하차 하면 민주당경선은 중지되고 새로운 기회가 올줄 알고 그랬을 것

이란게 추론이다.그러나 변수는 정동영이었고 경선을 끝내봤자 노무현후보에게 큰차이로 뒤져 대

선후보가 될 수 없음에도 경선완주를 천명하고 끝까지 경선에 참여함에 따라 결국 노무현을 민주

당 대선후보로 선출하게 된다.결국 정동영의 원칙과 소신이 노무현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만든 것

이다.


그뒤 민주당 대선후보인 노무현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이어받은

정몽준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민주당내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을 상대로 노후보 단독으

로는 대선승리 가능성이 희박함을 이유로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논의가 급물살을 타게되어 결국

노무현후보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져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를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일부 노빠들은 이런 민주당의 후단협문제를 노무현 흔들기로 규정하고 비난하지만 사실 후단협의

의도가 뭐였든 그런 후보단일화문제가 없이 노무현과 정몽준이 각자의 길을 갔다면 노무현의 승리

가 아닌 이회창의 승리로 귀결되었을 것이며 한나라당 정권이 창출되었을 것이란 결론은 누구나가

다 내릴 수 있는 명제이다.


여기까지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노무현과 정동영의 관계이다.전후관계

를 차치하고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정동영의 원칙과 소신으로 노무현 후보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정동영이 참여정부 1등 공신이란 사실에 토를 달 수 없을 것

이다.


이후 참여정부의 탄생과 민주당의 탈당..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창당에서 발생한 지지세력 분열과

갈등을 넘어 탄핵사태에 다다른 상황에서의 노무현과 정동영의 관계이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을 하고 여당인 민주당에서 친노파와 당권파 간에 권력투쟁의 불꽃이 타오

르기 시작한다.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1등공신인 정동영을 주축으로 신기남,천정배등의 친노파는

당권파에게 당의 쇄신과 개혁을 요구하지만 당권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친노파는 탈당이

라는 초강수를 두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당시 모든 언론이나 정가의 소식통은 노무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정계개편이라는 얘기가 흘러 나왔고 상황을 보더라도 현직 대통령의 허락 없이 의

원 40명이 단독으로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그리고 그뒤 노대통령도 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

우리당에 입당을 한다.그렇게 해서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40명과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5명 그리

고 개혁당의 2명, 총47명의 초미니 여당이 탄생을 한다.


불행한 일이었다.이부분에서 만큼은 노무현, 정동영의 오판이었고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였다고 생

각한다.당시 133석의 한나라당을 놓고 115석의 민주당을 조깬 것이다.단순히 의석40석이 줄어든것

아니라 민주당을 중심으로 모인 민주개혁세력과 친노세력간의 분열을 가져온 것이다.이를 단초로

참여정부부터 지금까지 민주개혁세력은 분열이라는 홍역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그간의 선거에서

번번히 한나라당에 완패를 당한 것이다.노무현과 정동영은 그렇게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라는

같은 배를 타고 험난한 항해를 하기 시작한다.노무현과 정동영은 동지이자 공동운명체 였던 것이

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진다.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정동영

이 국회본회의장에서 탄핵소추 통과에 대한 울분을 토하며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탄핵정국을 맞으며 17대총선이 실시되었고 탄핵의 바람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152석의 의석

을 확보하는 기적을 일군다.이 또한 탄핵을 맞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당의장 정동영이 중심에 있

었다.이후 노무현은 대선경선과정과 탄핵과정의 보은차원에서 정동영을 대권수업에 유리한 통일

부장관에 임명한다.


열린우리당 창당과 탄핵과정에서 보았듯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당의장은 정치적 동지이자

운명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문제는 이후 유시민의 열린우리당에서의 분탕질과 보건복

지부장관이 되면서 부터 대통령과 여당간에 파열음이 불기 시작한다.


17대 총선을 선두에서 지휘해 승리로 이끈 정동영 의장은 당내 확고한 지지기반을 마련함과 동시

에 통일부장관으로 입각됨에 따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그러나 열린우

리당내 영남권 친노세력은 급성장한 정동영과 호남에 대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휩

싸이게 되고 노무현 또한 그런 위기에 공감을 하여 김근태를 동시에 내각에 입각시켜 정동영의 급

부상을 견제하기 사작한다.정동영이 통일부장관에 임명되는 이후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영남친노

세력은 정동영 장관과 호남을 정치적 동지이자 동반자가 아닌 견제의 대상이자 지역주의 극복의

희생양으로 본 것이다.단적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영남친노세력은 지역주의 원인에 대하여 언

제나 호남을 거명했고 호남의 지지보다는 영남에서의 지지에 더 갈증을 내고 목말라 했다.더 나아

가 호남을 버려야 영남에서 표가 나오며 그래야 전국정당이 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영남패권주의

에 근본을 두고 나오는 반응을 보였며 지금 유시민과 국참당이 이런 논리를 이어받아 민주당과 호

남을 비하하는 것이다.민주당과 호남을 비하해야 영남에서 표가 나오기 때문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통일부장관으로 개성공단조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등 대권주자로서

의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정동영 장관을 영남에서 대권주자가 나오길 바라는 영남친노세력들은 더

욱 그 행보에 위기감을 느끼며 타격를 가하기 위해 정동영 죽이기 계획을 준비한다.당시 DY계는

참패할것으로 예상된 5.31지방선거 전에 정동영 장관을 당으로 복귀시켜 그 책임을 모두 정동영

장관에게 전가시킬 것이란 의혹을 갖기 시작하고 그 의혹은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10.26재보선 참

패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당을 외면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던 정동영은 김근태와 당으

복귀했으며 전당대회를 거쳐 당의장에 오르지만 이번에 오른 당의장이란 자리는 처음과는 그 성격

이 달랐다.초기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이자 동반자관계였던 당의장 자리가 다시 돌아와서는

청와대의 지원을 받는 당내 영남친노세력과 정동영 의장이 힘겨루기 하는 자리가 되어 있었던 것

이다.


그 결과는 지방선거도중 영남친노세력의 선두주자인 김두관 최고위원이 당지지율 부진의 책임을

지고 정동영 의장의 사퇴를 요구한다.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당을 이끄는 수장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영남친노세력의 정동영 죽이기 플랜이 노골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수단은 정치적 도의도

예의도 없는 저잣거리 양아치만도 못한 짓을 영남친노 김두관이 저질렀다.그뒤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참패를 했고 6.1일 정동영 의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하겠다는 말을 남긴채

당의장직에서 물러나 칩거에 들어 갔다.영남친노들의 정동영 죽이기 계획은 완성되었고 그 뒤 청

대와 영남친노들은 지지세력 분열과 개혁실패에 대한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나

라당을 향해 끊임없이 대연정이라는 구애를 펼친다.그리고 그 중심에 유시민이 있었다.


얼마간의 칩거로 정동영은 정계개편과 다음 대선승리에 대해 어느정도 생각을 굳혔으리라 본다.

지지도 낮은 대통령과 선거에서 백전백패한 열린우리당으로는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 정권

을 넘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문제는 민주당 탈당으로 인한 지지세력의 분열과 과반수의석을

가지고도 해내지 못한 개혁실패로 지지율 반등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초기 민주당 탈

당으로 민주당과 척을 졌고 대북송금특검으로 국민의 정부와 척을 졌고 각종 개혁실패로 진보세력

과 척을 졌다.이제는 대통합이다.흩어진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다른 야당과 힘을 합쳐야 한나라당

을 이길 수가 있다.그래서 택한 길이 분열정당이자 식물정당,영남친노정당인 열린우리당 해체이며

50년 민주주의를 지켜온 민주당으로의 야권 대통합이다.[참고로 웃기는게 당시 열린우리당 사수

를 자임하고 갈 사람은 다 가라던 유시민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에 입당한 것이다.]


정동영의 이런 생각은 오로지 열린우리당을 고집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일으켰으며 결국

결별로 이어진다.살아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간의 힘겨루기... 청와대와 친노들은 민주당 대선후보

로 선출된 정동영 후보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고 비난을 퍼부었으며 친노세력중 일부는 문국현을

지지하고 일부는 이명박을 지지했다.정동영과 호남에 정권을 맡기느니 아에 한나라당에 주는게

낫다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그 선상에서 유시민은 "한나라당이 정권잡을 확률이

99%이며 한나라당이 정권잡아도 나라 안망한다"라는 망언을 퍼부었던 것이다.결국 친노세력의

여론전과 비난전으로 정동영 후보는 낙선했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 지금 대한민국이 이꼬라지

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노무현과 정동영의 관계는 정치적 동지와 동반자로 출발해서 라이벌로 마무리 되었다.

그 사이에서 영남친노들과 유시민의 분탕질이 한몫 했으며 노무현의 리더쉽과 정동영의 리더쉽이

아쉬운 부분이다.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 중 지도자가 가져야할 리더쉽에서 지도자는 국

민보다 반발짝만 앞서가라고 하셨다.한발짝 앞서갈 경우 국민의 손을 놓치기 쉽고 반발짝만 앞서

가면 국민의 손을 놓치 않고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국민을 자신보다 사랑한 김대중 대통령을

닯아가는 정동영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보면서 또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글을 맺는다.

Wednesday, January 18, 2012

이후의 이후, ‘포스트 담론’ 20년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1188.html


이후의 이후, ‘포스트 담론’ 20년 [2012.01.16 제894호]
[기획]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포스트 담론은 무엇을 남겼나…포스트 담론 심포지엄 준비하는 학자들, “신자유주의 길 터주었다”는 반성과 “사회운동 다각화 기여” 평가 엇갈려
▣ 이세영 
         싸이월드 공감 
시인에서 기자를 거쳐, 청와대 행정관으로 소속을 ‘이탈’해버린 김중식은 1990년대 초반에 쓴 시 ‘이탈 이후’에서 동시대를 견뎌야 하는 운동권들의 난감함을 이렇게 적었다. “활처럼 긴장해도 겨냥할 표적이 없다.” 그가 묘파한 1990년대식 우울은 동년배 시인 진은영이 쓴 ‘70년대산’의 시정(詩情)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두 사람의 시에서 묻어나는 짙은 허무의 멜랑콜리는, 1990년대의 격변과 혼돈 속에서도 여전히 80년대식 전의(戰意)를 버리지 못한 이들이 맞닥뜨렸던 ‘적(適)의 실종’ 상황과 결부돼 있다. 적의 실종을 김중식은 ‘중심의 부재’와 연결짓는데, 이때의 ‘중심’이란 현실 운동의 궁극적 지향점으로서의 사회주의, 세계 인식과 정치적 실천의 이념적 준거로서의 마르크스주의쯤으로 대체해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 1992년은 한국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이 정점에 달했던 해다. 1992년 7월31일 서울 숭실대에서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대토론회 장면. 청중 가운데 김문수 경기지사와 장기표 전 신문명연구소장의 모습도 보인다.                                                                              <한겨레> 자료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어
20년 전, 그땐 그랬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의 파산에 절망한 많은 이들이 ‘포스트 담론’의 품으로 귀의하던 시절이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탈마르크스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 포스트내셔널리즘(탈민족주의) 등 ‘포스트 접두사’가 붙은 수많은 담론이 젊고 명민한 연구자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포스트 담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 문명과 현존 사회질서를 포괄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준거틀로 기능했는데, 그 영향력은 철학과 사회학, 정치학, 문학, 역사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과학문을 포괄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 과정이 한국의 사회운동이 1990년대 들어 맞닥뜨린 근본적 상황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노동운동이 퇴조하고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시민운동 안에서도 환경·여성·복지·인권 등 각 부문의 독자성이 강화되면서, 더 이상 사회적 갈등과 적대가 계급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포스트 담론의 교의가 진보 진영 내부에도 암묵적 합의로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포스트 담론 20년은 우리 사회에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최근 학계에선 1991~92년부터 본격화한 포스트 담론의 수용사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려는 40대 연구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진태원(철학)·김정한(정치학) 고려대 연구교수가 주도하고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사회학), 이명원 경희대 교수(국문학), 안준범 성균관대 교수(역사학) 등이 참여해 5월 말 고려대에서 개최하는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란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한국의 지식사회가 겉으로는 포스트 담론에 대해 유보와 거부의 태도를 취했지만 실제론 가랑비에 옷 젖듯 포스트 담론의 자장 안에 흡수돼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이것이 “포스트 담론이 지닌 지적인 힘의 효과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논쟁과 토론의 부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좀더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시점을 2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90년, 이상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새로운 세계를 위한 철학1·2=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역사를 생성 이래 최근까지 체계적으로 정리. 동독사회과학아카데미 지음(새물결/4300원·5300원).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사회변혁의 문제에 접근하는 헤게모니 개념의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정치전략으로서의 급진적 민주주의를 모색. 영국 학자 라클라우·무페 공저(터/4800원).
이제 막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동독의 1960년대산 관변 교과서가, 5년 전 서방에서 출간돼 사실상 정전(Cannon)의 반열에 오른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진영의 핵심 저작과 나란히 독자의 간택을 기다린다. 1990년 11월6일 <한겨레> 9면의 지면 풍경이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성사적 의미와 무게가 상이한 두 책이 22년 전 <한겨레>에선 똑같은 크기의 한 줄짜리 단신으로 취급됐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진보 진영의 핵심적 논쟁 주제로 떠올랐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라클라우·무페의 저작이 왜 저토록 푸대접을 받았는지는 납득이 쉽지 않다. 이는 물론 서구 진보이론에 대해 지적 감식안을 갖춘 이가 드물었던 당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부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 직후 영국의 좌파 이론가들 사이에서 펼쳐진 논쟁이 1992년 겨울 <포스트맑스주의?>라는 번역서로 묶여 국내에 출간됐을 때, 한국의 학계와 언론은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겨레>는 학술면의 4분의 1을 털어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변혁과 헤게모니>가 출간된 1990년 11월로부터 2년. 그사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의 진보 지식인 사회에 1991~92년은 가히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1991년 말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됐다. 국내에선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사망으로 촉발된 1991년 5월 투쟁이 처절한 패배로 막을 내리면서 운동 진영의 에너지가 극도로 위축됐다. 좌절의 시기를 거치며 연구자와 운동가들 사이에선 안토니오 그람시·로자 룩셈부르크 등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속속 복권됐고, 다른 한편에선 라클라우·무페의 급진민주주의론과 시민사회론 같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한겨레> 김종수
서동진 “자유주의와의 불장난”
<사회변혁과 헤게모니>를 번역한 김성기 전 <현대사상> 주간(당시 서울시립대 강사)이 비평이론 수준에서 논의되던 포스트모더니즘을 사회이론 차원으로 옮겨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는데, 이후 그는 10년 넘게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포스트주의 이론가로 활약하게 된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교리를 담은 논문들이 이병천 교수 등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1·2·3>이란 편역서로 선보인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른바 ‘전통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이론>과 <문화과학> 등 동인지 창간을 통해 포스트 담론에 대항했는데, 그들의 이론적 무기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환원론을 비판하며 이데올로기와 계급투쟁, 이론적 실천의 중요성에 천착한 프랑스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였다. 하지만 알튀세르를 통해 시작된 서구 좌파이론의 사상적 해금은 푸코·데리다·들뢰즈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포스트 담론이 사회비판의 급진화와 다원화란 이름 아래 걷잡을 수 없이 유입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두 잡지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데도 적극성을 띄게 된다.
»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               <한겨레21> 김경호

이채로운 점은 포스트 담론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는 진태원·서동진 교수 역시 이 시기를 거치며 전통 마르크스주의에서 프랑스 철학과 문화연구 등으로 탐색의 궤도를 수정해간 학자들이란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 교수는 당시의 이탈을 “일종의 불륜이었으나 후회는 없다”고 했다. 성정치학에 탐닉했던 자신의 과거를 “자유주의와의 불장난”이었다고 자기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그는 1990년대의 포스트 담론이 한국의 진보적 학문 진영에 끼친 부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대한 비판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무장해제시킴으로써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는 길을 터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의 실천적 무능함과 이론적 추상성을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론이자 체제 너머의 대안을 상상하는 해방의 이데올로기(=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서 교수는 말한다.
반면 진태원 교수는 포스트 담론의 수용 과정에서 나타난 연구자들의 무책임과 태만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푸코와 들뢰즈의 이론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포스트 담론이 1960~70년대 변화된 자본주의 현실에서 체제 전환에 필요한 새로운 ‘이론적 무기’를 발견하려는 실천적 관심에서 등장한 것과 달리, 한국에선 담론의 도입과 정착이 서구에서 유행하는 최신 이론을 수입해 학문적 유통 마진을 챙기려는 속물적 관심에 의해 인도돼왔다는 것이다.
20년 맞아 재출간 되는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한편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양극화의 심화라는 현실 변화를 근거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포스트 담론의 다원주의를 기각하고, 다시금 낡은 경제주의로 회귀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포스트 담론의 효능과 타당성을 터무니 없이 부풀리는 것 못잖게 그것의 설득력을 부당하게 깎아내림으로써 외부 공격에 취약한 ‘이데올로기적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 역시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진보학계가 포스트주의라는 ‘괴물’과 ‘허깨비’에 맞서는 이중의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마침 절판됐던 라클라우·무페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가 1월 말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에서 재출간된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란 원래 제목도 되찾았다. 한국어 초판이 출간된 지 만 21년3개월 만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모두가 정치에 나서면 '소는 누가 키우나?'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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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 왔다. 올해 정권교체가 될 것인지가 새해 벽두부터 모두의 관심사인 것 같다. 그동안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주변 여러 사람들이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오라고 한다. 그래서 누가 정치에 나서려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회변화를 위해 시민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운동에만 몸담아서는 생계조차 꾸려가기 버거운 사회운동 출신들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자기 직업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를 겪으면서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한 사람, 나름대로 자기 직업 영역에서 성공을 했으나 더 큰 자기실현을 하고픈 사람, 그리고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 새내기 정치가들의 열정에 힘입어 정치권도 물갈이되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의 화두가 모두 정치로 모아지고, 사회운동 지도자급 사람들이 너도나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지만, 사회의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잘난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드는 현실 

그런데 파트타임 시민운동을 해온 나는 정치하겠다는 사회운동가들을 말릴 명분이 없고, 모든 일을 정권교체와 연결시키는 세상의 보통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우선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사회운동을 해서는 자신의 경력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자녀들 교육은 물론 가족의 생계조차 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익 시민단체의 돈줄이 막히고 진보적 학자들의 연구용역조차 끊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 대학, 언론, 지역사회 어느 곳도, 뜻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노력하여 그 영역에서 조직도 발전시키고 자기실현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 점에서는 그래도 기업이 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에 나서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충고는 지극히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한국사회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20여년 전 나는 노동현장조사를 하면서 노조위원장 출신들의 이후 성장통로가 마련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논문과 책에서 그것을 강조한 바 있다. 87년 울산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권용목은 고생 끝에 뉴라이트 쪽으로 갔다가 결국 일찍 사망했다. 이것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비극이다. 오늘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 저렇게 미약한 것은 앞장 선 사람들의 스펙과 헌신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20여년 민주노동운동 역사에 제대로 된 노동교육센터나 노동재단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운동 20여년에 시민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고 그들을 먹여살려줄 기관 하나 없다. 기자들은 삼성의 돈을 받아 미국연수를 가고 돌아와서는 삼성맨이 된다. 소신있는 기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민간재단 하나 없는 이 조건을 생각하면 그들을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다큐를 만들 수 있는 자질과 의욕을 가진 가난한 영화제작자를 후원해주는 기관이 없고, 학자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조사·연구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조사비를 구할 길이 없고,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있는 연구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대학원 하나 없는 현실도 그렇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좋은 거름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조건이 안되어 있으니 모든 '잘난 사람들'은 곧바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로 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간 세상을 바꾸겠다고 수많은 사회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들었건만, 오직 자기 자신만 권력자로 바꾸었을 따름이며 일부는 부나방처럼 불에 뛰어들어갔다 타죽고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에서 경륜과 식견을 쌓은 전직 운동가들은 다시 운동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비극이다. 이들을 정치로 내몰고, 정치경력을 쌓은 이후에도 다시 사회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후진성, 정치가에 대한 배반감, 양심적 인사들의 변신과 도덕적 파탄을 계속 목격해야 하며 대중의 좌절과 실망감은 계속될 것이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줄기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거름을 주는 일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저 나무에 영양제만 놓으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정치학자들은 이쁜 좋은 꽃이 꼭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사실만 강조한다. 

우리사회 각계의 중견인 486세대는 언제까지 선거판에 나서는 친구들 정치자금을 대고만 말 것인가? 왜 그 부자 노조는 노동운동, 아니 자기 자식들의 미래에 그렇게 무관심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오늘의 지위를 갖게 된 대기업들은 왜 자기 회사 이미지 홍보에만 그 많은 돈을 쓰는가? 우리사회에 돈은 충분히 있다. 그 돈이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되지 않을 따름이고, 또 돈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가장 '준비된' 예비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지역이나 자신의 분야에 남아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속 발휘해주어야 하고 정치권으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그 경험을 전수해서 집단적 지혜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대다수 사회운동가들이 거름이 되지 않으면 제도정치에 나선 동료들도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익을 위해 봉사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뒷받침해주는 물적 기반이다. 우선 공직이나 대학에서 이들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내의 여러 진지들, 특히 많은 공익재단을 만들어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오직 중앙정치로만 통하는 조선시대 이래의 과도정치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계속 후진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바닥현실을 보면, 교체되더라도 그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2012.1.18 ⓒ 창비주간논평

Sunday, January 8, 2012

노동문제와 경제체제

어떠한 종류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정치경제가 돌아가느냐와
노동자가 임금, 노동, 및 노사관리에 있어서 처하게 되는 부당함, 부정의와 고통은
물론 연관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적당한 수준의 복지국가/사민주의적 정책을 주장한다고 하면
일부(?) 좌파 이론가/활동가/운동가들은 그것을 열심히 비판하는데,
(김규항, 박노자 류)

결국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노동자 해방'이라는게
1) '적정한/정당한 수준의 봉급을 받고 좀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복지국가/사민주의 국가를 추구하고 정관경 유착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권리가
정치경제적으로 짓밟혀지는걸 제도적으로 막도록 노력하는 방식이 과연 정말로
옳지 않은 방향인건지 묻고 싶어지며
2) 좀 더 래디컬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별로 동감해주고 싶지 않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a. 노동문제의 제반 문제들을
b.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인 것으로 혼동하는데서 나오는 래디컬한 사상이 있는데,
b는 a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므로 b를 개선/개량시켜 a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틀리지 않다.

물론 b를 충분조건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좌절감은 이해한다.
다만 그것 때문에 현실 정치의 투쟁 영역에서 이상주의적으로 나가다보면 문제를
해결하기 더 힘들어진다고 본다.

(나도 이상주의는 동경하나, Barney Frank의 말처럼, 이상주의는 구체적인
현실적 문제 - 집짓고, 복지 프로그램을 통과시키고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라도), 등등-
의 해결방안을 현실화시키지 못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뿐이다.
시베리아 횡단을 해야하는데, 비행기가 없으면 마을버스라도 타고 가야한다. 시간맞춰
버스타러 가야한다. 이상주의는 버스를 놓친다.)

그들이 그들의 사상에 대한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실용적 점진주의에 대한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Ron Paul

ENEMY OF THE STATE by 



"Mitt Romney will probably win in the end, but each of his serially surging competitors enjoys more immediate access to some essential region of the Republican soul. Herman Cain is the tough, no-bullshit businessman, Rick Santorum the devout pro-lifer, Rick Perry the hypermasculine cowboy, Michele Bachmann the evangelical populist, Newt Gingrich the swashbuckling geostrategist. It seems fitting that the final surge should belong to Ron Paul, who speaks most directly to one of his party’s deepest emotions: hostility to government."

"Especially to the self-selected group that comes to the Iowa Republican caucuses, Paul’s positions are pulse quickening. If you are antitax, Paul has that sentiment nailed more than any other candidate. If you are antiwar, Paul is right there with you. If you fear for your personal freedoms, Paul has you covered. And if you want a sweeping philosophy, deeply grounded in fundamental texts (Hayek, von Mises, Rothbard), Paul is your man. Nobody has a better claim to be a protest candidate. He’s the only one who has ever run for office from a third party. He’s not about passing bills; he’s about root-and-branch change. His popularity, even if it’s temporary, demonstrates that all politics isn’t necessarily local—that big ideas can exert a pull on voters, too."

"Paul’s baseline obsession is with currency: President Nixon’s decision, forty years ago, to take the United States off the gold standard is what brought him into politics. His hatred of the Federal Reserve Board is related to a mistrust of currencies managed by governments. Underlying everything is, of course, a larger mistrust—the sense that in some hushed Washington conference room highly consequential arrangements are being made that will help a few privileged insiders and hurt ordinary Americans. Although Paul has spent most of his life directly benefitting from one or another federal payroll or program, starting when he served in the Air Force, he isn’t just striking a pose when he describes government as the enemy of freedom. He means it."

Saturday, January 7, 2012

Rick Santorum & David Brooks

Rick Santorum과 Davis Brooks의 한계

"The communitarian crush on Rick Santorum" - The New Republic

http://www.tnr.com/blog/the-stump/99294/the-communitarian-crush-rick-santorum



: David Brooks is back at it today, taking a second straight column to praise Rick Santorum for alone among the Republican candidates drawing attention to the woes of the working class and for drawing links between the strengths of their communities and values and our economic future. It is a more nuanced piece than Brooks' previous one, and notes that Santorum falls short when it comes to reckoning with the policy implications of a values-based economic outlook:
Santorum doesn’t yet see that once you start thinking about how to foster an economic system that would nurture our virtues, you wind up with an agenda far more drastic and transformational.
If you believe in the dignity of labor, it makes sense to support an infrastructure program that allows more people to practice the habits of industry. If you believe in personal responsibility, you have to force Americans to receive only as much government as they are willing to pay for. If you believe in the centrality of family, you have to have a government that both encourages marriage and also supplies wage subsidies to men to make them marriageable.
If you believe social trust is the precondition for a healthy society, you have to have a simplified tax code that inspires trust instead of degrading it. If you believe that firm attachments and stable relationships build human capital, you had better offer early education for children in disorganized neighborhoods. If you want capitalists thinking for the long term and getting the most out of their workers, you have to encourage companies to be more deeply rooted in local communities rather than just free-floating instruments of capital markets.
But of course these sorts of approaches are utterly at odds with current doctrine in the party whose nomination Santorum is seeking. I agree with Brooks that there is value in Santorum's mere acknowledgment that our society is no longer the land of Horatio Alger that Mitt Romney makes it out to be; indeed, I was one of the first to identify this aspect of Santorum's appeal. But I would caution against overstating Santorum's commitment to this message, as I think that Brooks, even with the above caveat, comes close to doing. The truth is, even someone as conservative as Santorum has let himself be ratcheted rightward to be considered acceptable in the GOP of 2012. He is in favor of slashing the already-low tax rates on capital gains and dividends, and he rails against the threat of European social democracy with as much fervor as any of the other candidates, a rhetorical stance that would make hard indeed to come out for wage subsidies or early education for children in "disorganized neighborhoods" or "encouraging" companies to be more "deeply rooted in local communities." Brooks notes that Santorum has in recent years come around to supporting community-building government programs like Americorps, but he must not have been at the Santorum event I was at on Friday in Marshalltown, Iowa, where Santorum told a young man who got up to advocate for Americorps and Habitat for Humanity that he just didn't see how we could afford to fund such efforts. "Is it the role of the federal government to do this?" he told the young man. "There are going to be programs like Americorps where we just don't have the resources." The young man,who appeared generally inclined to support Santorum, seemed slightly stunned by the answer. "Programs like these, you cut them and you'll be building more prisons. You can't find a more family-friendly organization than Habitat for Humanity," he said. In other words, he was arguing for the programs on Santorum's own terms, almost as if channeling Brooks. But Santorum ignored him and moved on.

Some interesting comments:


- Brooks: "If you believe social trust is the precondition for a healthy society, you have to have a simplified tax code that inspires trust instead of degrading it."
When he thinks of building social trust, the first thing he thinks of is making life slightly easier for tax accountants? How does one hit the 'send' button after typing something like that and not then jump off a bridge out of embarrassment?
- My reaction when I read Brooks's column this morning was that his lofty ideals don't come even remotely close either to Santorum's history in the Senate or to his policy positions in the campaign. This is vintage Brooks: creating an association between lofty ideals and a favored politician by putting both in the same column when in fact they have no association in reality. Since Brooks has become the brain expert, he uses the association technique often. I suppose that if it's okay for Republicans to create their own reality it's okay for columnists to do the same.
Also, Brooks uses vague language. Here's one sentence: "If you want capitalists thinking for the long term and getting the most out of their workers, you have to encourage companies to be more deeply rooted in local communities rather than just free-floating instruments of capital markets." What on earth does that mean? Again, it's vintage Brooks. What would Strunk and White think about the use of such vague language. They would identify it for what it is, which is the language of the deceiver, the language of the propogandist.
- "But Santorum ignored him and moved on." Because Santorum is a holier than thou narcissistic little shit of a man. He longs for an America of the 1950's and pretends we can go back to that age but is utterly clueless as to reasons and conditions that existed then (strong unions, very large manufacturing base)
- A couple of friends say I am being unfair to Brooks by comparing him to a propagandist by selecting one sentence out of an entire column. Fair enough. But I didn't even select the most egregious example but rather a sentence that has no meaning at all. Here's another: "If you believe in personal responsibility, you have to force Americans to receive only as much government as they are willing to pay for." "Force"? At the end of a gun? No, not even Brooks. He must be referring to the balanced budget amendment (what else?). Why not say that Brooks and Santorum believe only those who support the balanced budget amendment believe in "personal responsibility". Brooks relies on an uncritical (i.e., not close) reading of his columns, the same as does the propagandist.
- Forget Santorum's bigotry, his misogyny, his attacks on birth control and peoples' private sex lives which apparently he thinks it is the business of the state to regulate. This is "values" apparently.
From Brooks' piece, this is the absolute piece de resistance and I would like an apology from Mr. Brooks for even thinking of it let alone publishing in the NYT:
"If you believe in the centrality of family, you have to have a government that both encourages marriage and also supplies wage subsidies to men to make them marriageable."
EXCUSE ME?
- Oh by the way. If Hillary or some other "communist" says "It Takes A Village" we are attacked but now we got the family thing; oh give me a break please. And since when does Catholic doctrine OF ANY KIND have any business in an AMERICAN election?
This is not 15th century Spain thank goodness. It is the job of the supposedly independent press to remind our politicians of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