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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20, 2012

내적 필연성, 칸딘스키

 대학교수직 제의를 거절하고 뮌헨으로 가서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가 현대예술의 방향마저 바꿔버린 최초의 추상회화 ‘첫번째 추상 수채’를 제작한 것은 44세 때인 1910년이다. 나치에 의해 퇴폐 예술가로 지목돼 작품이 몰수되기도 했던 칸딘스키는 1933년 프랑스에 귀화해 여생을 보냈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는 칸딘스키의 예술론을 집약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무릇 예술가의 임무라는 것은 형식을 지배하는 데 있지 않고, 내용에 적합한 형식을 만드는 데 있다”고 선언한다. 존재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모방하고 재현하던 전통적 회화를 벗어나, 예술가의 ‘내적 필연성’에서 우러나오는 형태와 색채로 화면을 채우는 현대예술은 그의 이 선언에서 시작됐다.
이로써 현대예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적 실체, ‘오브제’가 된다. 예술의 모든 외적인 표현수단이나 형식을 관통하는 예술가의 내적인 울림을 가리키는 말인 ‘내적 필연성’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정신이라는 칸딘스키의 생각이 담긴 핵심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참된 예술작품은 비밀로 가득 차고 수수께끼 같은 신비스런 방식으로 예술가에 의해 생겨난다.”
칸딘스키의 글은 그 자체로 음미할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흰색은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그것은 젊음을 가진 무(無)다. 정확히 말하면 시작하기 전부터 무요, 태어나기 전부터 무인 것이다.”(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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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쿤스트독은 오는 10월 12일부터 25일까지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안병석 개인전을 갖는다.
이 전시기획은 카딘스키의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의 텍스트에서 미술사적이고 인문학적인 배경을 찾는다. 이 텍스트가 배경이 되는 데에는 그 텍스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적 필연성’의 개념이 이번 전시의 내용이 되는 작가의 정신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내적필연성’은 정신의 억제할 수 없는 자기표현의지로 외적인 것의 자유로운 사용에 의해 표현된 것을 말한다. 특히, 칸딘스키는 내적필연성을 갖는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로부터 분리되어 자립적인 생명을 획득하고 개성화 되고, 정신적,  독립적 주체일 뿐 아니라 물질적인 현실생활을 영위하며,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영위하고 영향을 미치며, 정신적 분위기의 창조에 관여한다.” 
예술작품이 작품화 될 때 예술작품은 예술가에게서 독립하여 하나의 생명성으로 작용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작가의 내적필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내적필연성은 작가에게 있어서 깊은 정신성이며 작가의 미적활동의 태도에 밀접하게 연관된다. 즉, 이것은 작가의 작업태도며 작가의 삶이다.  
예술의 정신성에 대한 깊은 작업을 해온 작가 안병석은 시대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미디어 매체를 그의 작업에 끌어들인다. 그는 ‘바람결’, ‘물결’과 같은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이 주제를 바탕으로 이번 쿤스트독에서는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이 멀티매체는 동시대의 예술의 정신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한다. 전시제목은 ‘Image Movie 展’로 멀티매체를 활용한 평면회화의 표현연구'로 현대미술에서 예술의 정신성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살펴보는 데 의미가 있다.


Tuesday, January 17, 2012

미니멀리즘 음악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음악가는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존 애덤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 스티브 라이히에 관한 것이다.

 스티브 라이히 (Steve Reich, 1936-)의 음악적 특징은
 미세한 변화를 동반하는 반복의 음악이 특징이다.
 반복은 서양음악의 기본이다. 그러나 반복만 있을 경우 이는 그 기본을 전복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라이히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은 지속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작아 일반인들은 급격한 변화 보다는 전체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쉽다.

* 스티브 라이히 (Steve Reich, 1936-)
뉴욕주(州) 뉴욕에서 변호사와 가수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뉴욕필하모닉의 팀파니 연주자로부터 드럼을 배웠다. 그후 코넬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1953∼1957) 줄리아드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1963년 밀스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밀스대학에서 다리위스 미요(Darius Milhaud)와 안젤로 L.베리오(Angelo L.Berio) 등에게 배웠다.

건반악기와 타악기도 연주했으며 자신의 합주단을 조직한 1966년에 이를 즈음 이미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들 작품은 20세기 중엽 고전음악의 화성과 음조의 특징적인 복잡성을 배제하고 하나의 코드, 짧은 모티프, 가벼운 감탄 등 최소한의 소재가 반복되면서 아주 느리게 조금씩 변주되는 대규모 작품들이었고, 경우에 따라 녹음된 연주와 실제 연주자의 연주가 결합되기도 했다.

그소수민족과 고대음악으로부터 영감을 얻기 시작하여 가나에서 아프리카의 북 연주(1970)를, 시애틀에서 발리의 가믈란 음악(1973)을, 예루살렘에서 중동 지방의 노래(1977)를 배웠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에 4대의 전자오르간과 마라카스를 위한 《4대의 오르간 Four Organ》(1970), 작은 동조 드럼, 마림바, 글로켄슈필, 2가지 음성, 휘파람, 피콜로를 위한 《드럼 연주 Drumming》(1971), 두 사람의 박수로 연주하는 《박수 음악 Clapping Music》(1972), 윌리엄 C.윌리엄스(William C. Williams)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106인이 연주하게 되어 있는 《사막의 음악 The Desert Music》(1984) 등이 있다.

단순한 모티프와 화음의 반복과 조합을 바탕으로 하는 미니멀리즘 양식의 대표적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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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음악 - 필립 글래스 (Philip Glass, 1937-)
  짧은 선율 조각이 조금씩 변해가며 반복된다.
  라이히가 리듬 위주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글래스는 선율 위주의 변화를 중시한다.
  글래스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라이히보다 대규모의 극장 음악에 미니멀리즘을 접목시켰다


필립글래스 소개
메릴랜드주(州)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플루트를 배웠으며 시카고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무조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어 뉴욕의 줄리아드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했으며, 이어 파리로 가서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에게 배웠다. 그곳에서 인도의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Ravi Shankar)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후 작곡 스타일에 그의 영향이 반영되었다.

한편 단조롭고 반복적인 스타일의 합주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들은 안정적인 온음계 구조 내에서 수축되거나 확장되는 일련의 싱커페이션이 이루어진 리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전자 키보드와 관악기를 사용하는 소규모 합주단이 연주하는 이러한 미니멀리즘적인 음악을 통해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뉴욕에서 차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함께 작곡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 Einstein on the Beach》(1976)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고전적인 서양음악의 화성적 요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드러냈다. 그뒤 모한다스 간디(Mohandās Gāndhī)의 인생 초기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오페라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1980)에서 대칭적인 코드의 시퀀스로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저음의 반복을 구사했는데,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 Bhagavadgita》를 각색한 대본의 종교적·영적 주제와 어울려 최면술과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19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으로부터 의뢰받아 오페라 《항해 The Voyage》(1992)를 작곡했다. 그후 고전음악계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혁신적인 기악곡과 성악곡, 오페라 음악 등을 작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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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음악가  존 애덤스 (John Adams, 1947-)
  30년대에 태어난 제1세대 미니멀리즘 음악의 뒤를 잇는 제2세대 미니멀리즘 음악의 작곡가
  화음의 사용에 대해 보다 고전적인 면모를 보인다.
  제1세대 미니멀리즘 작곡가에 비하면 보다 클래식한 면을 강조한다.


존 아담스 (b.1947 John Adams)는 미니멀음악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개인적으론 현재, 가장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작곡가를 굳이 한명 말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존 아담스'를 말할 수 밖엔 없을 정도이다.

블루밍턴 시절, 가장 개성적이면서도, 장인스럽고,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그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고, 특히 그의 리듬과 악기간의 상호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그의 현란한 관현악법에 감명을 받았었다.

존 아담스는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70년말에, 그당시 미국의 음악계를 지배하던 음열음악의 교조주의적 분위기에 반발하여,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팝음악에 나타난 대중적 영향과 전자음악 특히 씨퀀스 프래그램을 사용한 리듬의 결과들을 어쿠스틱 악기에 사용하는 실험을 하였다.

한편으론, 어떤쪽(?)에서는 미니멀음악의 대중적이고 친숙한 사운드가 쉽다고 평가절하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막상 존 아담스의 악보와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단지 선입견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언젠가, 현재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있는 사이먼 래틀이 그의 작품 "Harmonium" 를 리허설 하는 비디오을 본적 있는데, 관현악과 인성의 섬세한 전개과정은 현대음악 연주에 정평이 난 래틀조차도 여는 현대곡들보다도, 공들여 일일히 통제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다중적 리듬
(multi-layered rhythm)이 펼치는 현란한 음악의 전개, 관현악적 색깔과 악기의 난이도는 정말 대가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다.

아직도 그의 음악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조금은 뜻밖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그의 또다른 관현악 작품 "Harmonielehre" (1985) 를 추천하는데, 반드시 악보하고 같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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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20세기 음악의 대표적인 경향인 미니멀리즘 음악

미니멀리즘이란?
20세기 예술사조 중 하나로 예술적 소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을 사용하는 경향을 뜻한다. 보통 미술과 음악에서 널리 사용되며 문학이나 영화에 적용되기도 한다.

미술의 미니멀리즘
 그림의 경우에는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단순한 도형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기존의 그림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미니멀리즘은 추상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대표적인 화가로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와 조각가인 칼 안드레 (Carl Andre, 1935-) 등이 있다.
<안드레의 나무를 사용한 작품>


음악의 미니멀리즘
음악의 미니멀리즘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장시간 미세한 변화만 주는 반복의 음악, 진행은 없이 정체되어 있는 듯한 음악, 지속적인 강한 비트의 음악 등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창시자로 알려진 라 몬테 영(La Monte Young, 1935-)은 동양 사상에 영향을 받아 명상 음악을 염두에 두고 한 음이 오랜 시간 지속되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의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 연주단체가 기피하는 인물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연주단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미니멀리즘 음악이 주류에 편입된 이후 일반 오케스트라도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 미니멀리즘 음악과 20세기 미국 문화
 미국의 60년대 문화는 히피 문화 등으로 불리는 대안 문화가 30년대와 40년대에 태어난 20-30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히피 문화는 미국의 기존 가치에 대한 반항으로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비쳤다. 개인적 성공보다는 공동체적 삶, 도시적 삶보다는 유목민적 삶을 강조하였으며 자연스럽게 동양의 종교와 사상에 몰입했다.

미술과 음악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60년대에 본격적으로 미니멀리즘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이는 미국의 60년대 전반적인 문화의 변화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동양이나 아프리카의 비서구적 사고에 매료되었다. 히피 문화의 본산지라고 하는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는 음악의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이 주로 활동했던 곳이다.

대중문화와 예술의 접목
음악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의도적으로 대중음악을 모방함으로써 기존 현대음악계에 반항하였다.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전기기타나 키보드, 색소폰 등 기존 클래식 음악에서는 보기 힘든 악기들을 과감히 사용했고 이들의 연주회장에서는 앰프와 스피커도 쉽게 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이러한 대중음악적 성향은 젊은 청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또한 음악의 미니멀리즘은 동시대 미술의 상반된 경향을 모두 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미술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같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이라고 해도 음악과 미술은 그 예술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미술은 19세기부터 이어져온 예술적 가치관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미니멀리즘 작품을 만들었다면 음악은 그와는 반대로 예술적 가치관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미술의 미니멀리즘과 상반되는 미학관을 보인 팝아트 운동은 대중문화를 적극 수용하였다. 대표적인 작가인 앤디 워홀은 대중적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었고 벨빗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와 같은 록그룹의 매니저 역할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음악의 미니멀리즘은 그 정신에 있어서 미술의 팝아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림: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

결론적으로 20세기 후반의 현대음악은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 결과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흐려졌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연주 단체가 바로 크로노스 현악사중주단이다.

<크로노스 현악4중주>

Wednesday, January 4, 2012

끽다거




끽다거..喫茶去


당나라의 선승인 종심(778~897) 조주(趙州)지방의 관음사에 살았기에
조주 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종심 선사는 끽다거'喫茶去'라는 말로 선승들을 깨우치게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구요^^;


한 승려가 도착하여 종심선사가 묻기를
"여기에 처음 왔는가 아니면 온적이 있는가?"하고 물으니
"온적이 있습니다."하였고
종심 선사는 "차 한잔 마시게"(喫茶去)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른 승려에게 물으니, 또 다른 승려는"온적이 없다"하였습니다.

그러자, 스승인 종심 선사는 또 "차 한잔 마시게~"(喫茶去)라고 하였다고 하지요?^^;

뒤에 원주가 묻기를"왜 온적이 있다 해도 차를 마시라하고,온적이 없다해도 차를 마시라고 했습니까?"
하고 묻자
스승은 또 다시 "자네도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지월록指月錄기록)


이는 차를 마신 후에 맑아지는 정신처럼
차 마신후의 맑은 정신으로 선명하게 생각하고,깨우쳐서 정견(正見)을 지니는 것이
불도를 터득하는 지름길로 생각했기 때문에였다고합니다.


또한 차의 효능중 각성 효과를 중요시한 때문이라고도 하지요^^;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을 두고 조주의 '끽다화두'라고도 하여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고합니다.
종심선사는 조로趙老, 조씨趙氏라고도 불렸었고,
조주의 선다(禪茶)라는 뜻으로 '조주다''조주선''조로풍''조주다풍'이라고도 하였다고 합니다.


조주다가 언급된 것은 고려중엽으로,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차 끓이는 샘물'이라는 글에서
'차를 끓여 마신후에 상쾌함이란 쉽게 얻어지기 어려우니,몸소 조주선을 시행네보네'
라고 하여 차를 마시고 선을 수행하는 것을 '조주선'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집착을 떨쳐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뜻하므로 
차를 마신후를 참선의 단계로 보았다고 합니다.

Saturday, November 5, 2011

근시안

http://en.wikipedia.org/wiki/Raymond_Queneau

아무리 그럴듯해도 근시안 속에 사는 사람들...

Queneau questioned the Surrealist support of the USSR in 1926. He remained on cordial terms with André Breton, although he also continued associating with Simone Kahn, after Breton split up with her. Breton usually demanded that his followers ostracize his former girlfriends.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for Queneau to avoid Simone, however, since he married her sister, Janine, in 1928. The year that Breton left Simone, she sometimes traveled around France with her sister and Queneau.


http://en.wikipedia.org/wiki/Hundred_Thousand_Billion_Poems
https://www.google.com/search?gcx=c&ix=c1&q=Hundred+Thousand+Billion+Poems&um=1&ie=UTF-8&hl=en&tbm=isch&source=og&sa=N&tab=wi&biw=1333&bih=645&sei=%201O-0TpvvLK6u2AWSoMT5Bg

Saturday, October 29, 2011

hegelian

어떻게 생각하면 나의 예술에 대한 입장과 관점은
상당히 헤겔리언 변증법과 유사... negativity가 핵심. (헤겔 미학 자체에 대해서는 모름)

Nam June Paik

"Skin has become inadequate in interfacing with reality. Technology has become the body's new membrane of existence."

Wednesday, October 26, 2011

The Cremaster Cycle

완전 사기 캐릭터 Matthew Barney (세계적인 아티스트+전직 모델(J.Crew모델)+예일대+Bjork 남편 (파트너)...)의 5부작.
평가가 엇갈리는데 DVD 하나에 최소 1억씩 팔리는건 좀 부러움..; Cremaster 2 disc 하나가 2007년에 6억에 팔렸음...-;
youtube로 조금 봤는데 별로 와닿지는 않음... 배경 지식 너무 많이 필요하고 (e.g., celtic신화 등) visual image에 너무 치중하는 것들은 역시...

Cremaster cycle보다도 Bjork의 다음 인터뷰가 더 @#$%^&**()함...ㅎㅎㅎ

Thursday, June 30, 2011

순수

오늘 MJ의 염원이던 마티스 채플 방문을 하였다. 니스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떨어진 방스라는 곳에 있다.
마티스가 말년에 친하던 수녀님의 부탁으로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짓던 성당을 4년에 걸쳐 도우며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장엄함이라던가 위엄, 거대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고, 아름답고,하얗고 투명한, 순결한 성당이다

마티스 채플 사진들 (
http://tinyurl.com/3flelnx):




(내부에선 사진 찍기가 엄금이라 퍼올 수 밖에 없음ㅠ)

원래 마티스가 의도한 디자인을 보면 훨씬 색채도 강렬하고 구성도 복잡한데, 4년에 걸친 기간 동안 마티스의 생각이 바뀌어서 보다 순수함을 표현하는 쪽으로 디자인이 기울어졌다. 단순한 색채의 조합(노랑, 파랑, 초록)으로 이루어진 스테인드 글래스들, 하얀 바탕에 검은 브러쉬로 그려낸 벽그림들이.. 그 안에 가만히 앉아있다보면 그 순수함과 순결함이 (+마티스 특유의 디자인..)가져다주는 아우라에 묻히게 된다.


성당을 나와 작열하는 태앙 아래 방스 버스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이런 예술 작품을 모티브로 영화 시나리오 같은거 하나 나오면 어떨까 싶었다. 제목도 인트로도 내용도 영화 클라이막스도 배경 사운드 트랙도 머릿속에선 생생한데... 그럴 시간이나 자원이 없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나중에... 역시나 나중에....

그러면서 현실은...ㅎ 호텔 방에 돌아와서 쉬면서 김승우의 승승장구 김범수 편을 봤는데..ㅋㅋㅋ 너무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겸손하고 사람이 down to earth하고 재치도 있고...본받을만한 사람인듯... 글의 결론이 김범수라니...ㅎ

Friday, June 17, 2011

Bill Viola - The Reflecting Pool



1977-79년 사이의 작품.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해석이 가능하므로 뭐라 달고 싶지는 않다.
(단, 힘들게 가부좌 틀고 한참 동안 명상하는 것보다 6분50초짜리 이 작품 하나 제대로 보는게 여러가지로 더 많은 깊이 있는 울림을 주지 않나 생각된다...)

Bill Viola on Charlie Rose

http://www.charlierose.com/view/interview/6690

1995 interview. starts around at 41:00

Thursday, June 16, 2011

메모

파리도 이제 일주일이 되간다.
며칠간 뮤지엄 여러개를 휘몰아쳐 본 결과...+ 몇가지 근심거리들의 영향 + ... + ....
=> 비디오 아트의 충격.

하루 12시간 나돌아다니다 집에 와서 딴짓하다 쓸려니 졸려서 쓸 기운은 별로 없지만
요즘 좀 느낀바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쓰면,

-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내겐 20세기 이후의 예술이 진정한 예술로 여겨진다는 것.
- 비디오 아트는 참 대단함. (영상만이 아니라 음악도 같이 감). 비디오 아트 시초가 1900년대로 올라간다는게 충격.
- 비디오 아트 작품 몇개를 보고 나니
= 인간의 정신이란 안정된 것이 아님을, '정상'적 인간이란 얼마나 만들어진 개념인지를 느끼고
= 내겐 결국 아트는 해방이고 자유: 구조화된 일루젼을 해체시키는 역할. 경우에 따라 치유의 힘까지 가지고 있음.
= 야수파, 입체파 이런쪽 작품을 보니까 갑자기 어린애들 같음ㅎ 나쁜 의미가 아님.
최근들어 나는 예술에도 진보 (단지 진화만이 아닌)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현대 최신물리학을 보다 뉴턴이 미분 풀던거 보는 느낌이랄까.
= 작품 감상법: 어떤 조류의 작품들은 (포스트모던한 것들) 정적으로 차분하게 뜯어보면서 보면 안되고, 계속 시선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동적으로(?) 봐야한다. (Sigmar Polke가 말하듯...빨리봐야지, 천천히 보면 missing a point..!)
= 이건 철저하게 개인적인 생각들에 바탕한 취향인데: 비디오 아트가 회화에 비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유리한 점들...그래서 본질적으로 더 나은 점들.. 지금 설명하기엔 좀 벅참. 나중에...
= 이런 것 좀 배워보고, 또 해보고도 싶다...쩝...

퐁피두 센터 근대 아트 뮤지엄에 갔다가 이런걸 느꼈음.
그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멀티미디어 센터에 있는 컴퓨터로 비디오 아트들 모음을 보다 쇼크 먹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오늘 메모는 여기서 이만...


p.s. 다 쓰고 나서 한마디 덧붙임:
원래 난 좀 정신적으로 힘들때 예술에 급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어왔던듯...
몇년전에도 힘들어서 카라바지오나 조르쥬 라투르에 꽂혔었고
이번에도 좀...?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아트 운운하는데 기저에는 아주 단순한 스트레스--스트레스 해소물이라는 동물적 반응이 있는건데... 예술의 좋은 점은 그런 부조리도 그럴듯한 의미로 포장해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