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시인에서 기자를 거쳐, 청와대 행정관으로 소속을 ‘이탈’해버린 김중식은 1990년대 초반에 쓴 시 ‘이탈 이후’에서 동시대를 견뎌야 하는 운동권들의 난감함을 이렇게 적었다. “활처럼 긴장해도 겨냥할 표적이 없다.” 그가 묘파한 1990년대식 우울은 동년배 시인 진은영이 쓴 ‘70년대산’의 시정(詩情)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두 사람의 시에서 묻어나는 짙은 허무의 멜랑콜리는, 1990년대의 격변과 혼돈 속에서도 여전히 80년대식 전의(戰意)를 버리지 못한 이들이 맞닥뜨렸던 ‘적(適)의 실종’ 상황과 결부돼 있다. 적의 실종을 김중식은 ‘중심의 부재’와 연결짓는데, 이때의 ‘중심’이란 현실 운동의 궁극적 지향점으로서의 사회주의, 세계 인식과 정치적 실천의 이념적 준거로서의 마르크스주의쯤으로 대체해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어 20년 전, 그땐 그랬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의 파산에 절망한 많은 이들이 ‘포스트 담론’의 품으로 귀의하던 시절이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탈마르크스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 포스트내셔널리즘(탈민족주의) 등 ‘포스트 접두사’가 붙은 수많은 담론이 젊고 명민한 연구자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포스트 담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 문명과 현존 사회질서를 포괄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준거틀로 기능했는데, 그 영향력은 철학과 사회학, 정치학, 문학, 역사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과학문을 포괄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 과정이 한국의 사회운동이 1990년대 들어 맞닥뜨린 근본적 상황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노동운동이 퇴조하고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시민운동 안에서도 환경·여성·복지·인권 등 각 부문의 독자성이 강화되면서, 더 이상 사회적 갈등과 적대가 계급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포스트 담론의 교의가 진보 진영 내부에도 암묵적 합의로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포스트 담론 20년은 우리 사회에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최근 학계에선 1991~92년부터 본격화한 포스트 담론의 수용사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려는 40대 연구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진태원(철학)·김정한(정치학) 고려대 연구교수가 주도하고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사회학), 이명원 경희대 교수(국문학), 안준범 성균관대 교수(역사학) 등이 참여해 5월 말 고려대에서 개최하는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란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한국의 지식사회가 겉으로는 포스트 담론에 대해 유보와 거부의 태도를 취했지만 실제론 가랑비에 옷 젖듯 포스트 담론의 자장 안에 흡수돼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이것이 “포스트 담론이 지닌 지적인 힘의 효과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논쟁과 토론의 부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좀더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시점을 2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90년, 이상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새로운 세계를 위한 철학1·2=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역사를 생성 이래 최근까지 체계적으로 정리. 동독사회과학아카데미 지음(새물결/4300원·5300원).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사회변혁의 문제에 접근하는 헤게모니 개념의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정치전략으로서의 급진적 민주주의를 모색. 영국 학자 라클라우·무페 공저(터/4800원). 이제 막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동독의 1960년대산 관변 교과서가, 5년 전 서방에서 출간돼 사실상 정전(Cannon)의 반열에 오른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진영의 핵심 저작과 나란히 독자의 간택을 기다린다. 1990년 11월6일 <한겨레> 9면의 지면 풍경이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성사적 의미와 무게가 상이한 두 책이 22년 전 <한겨레>에선 똑같은 크기의 한 줄짜리 단신으로 취급됐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진보 진영의 핵심적 논쟁 주제로 떠올랐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라클라우·무페의 저작이 왜 저토록 푸대접을 받았는지는 납득이 쉽지 않다. 이는 물론 서구 진보이론에 대해 지적 감식안을 갖춘 이가 드물었던 당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부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 직후 영국의 좌파 이론가들 사이에서 펼쳐진 논쟁이 1992년 겨울 <포스트맑스주의?>라는 번역서로 묶여 국내에 출간됐을 때, 한국의 학계와 언론은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겨레>는 학술면의 4분의 1을 털어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변혁과 헤게모니>가 출간된 1990년 11월로부터 2년. 그사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의 진보 지식인 사회에 1991~92년은 가히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1991년 말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됐다. 국내에선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사망으로 촉발된 1991년 5월 투쟁이 처절한 패배로 막을 내리면서 운동 진영의 에너지가 극도로 위축됐다. 좌절의 시기를 거치며 연구자와 운동가들 사이에선 안토니오 그람시·로자 룩셈부르크 등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속속 복권됐고, 다른 한편에선 라클라우·무페의 급진민주주의론과 시민사회론 같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사회변혁과 헤게모니>를 번역한 김성기 전 <현대사상> 주간(당시 서울시립대 강사)이 비평이론 수준에서 논의되던 포스트모더니즘을 사회이론 차원으로 옮겨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는데, 이후 그는 10년 넘게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포스트주의 이론가로 활약하게 된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교리를 담은 논문들이 이병천 교수 등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1·2·3>이란 편역서로 선보인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른바 ‘전통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이론>과 <문화과학> 등 동인지 창간을 통해 포스트 담론에 대항했는데, 그들의 이론적 무기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환원론을 비판하며 이데올로기와 계급투쟁, 이론적 실천의 중요성에 천착한 프랑스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였다. 하지만 알튀세르를 통해 시작된 서구 좌파이론의 사상적 해금은 푸코·데리다·들뢰즈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포스트 담론이 사회비판의 급진화와 다원화란 이름 아래 걷잡을 수 없이 유입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두 잡지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데도 적극성을 띄게 된다.
이채로운 점은 포스트 담론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는 진태원·서동진 교수 역시 이 시기를 거치며 전통 마르크스주의에서 프랑스 철학과 문화연구 등으로 탐색의 궤도를 수정해간 학자들이란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 교수는 당시의 이탈을 “일종의 불륜이었으나 후회는 없다”고 했다. 성정치학에 탐닉했던 자신의 과거를 “자유주의와의 불장난”이었다고 자기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그는 1990년대의 포스트 담론이 한국의 진보적 학문 진영에 끼친 부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대한 비판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무장해제시킴으로써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는 길을 터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의 실천적 무능함과 이론적 추상성을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론이자 체제 너머의 대안을 상상하는 해방의 이데올로기(=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서 교수는 말한다. 반면 진태원 교수는 포스트 담론의 수용 과정에서 나타난 연구자들의 무책임과 태만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푸코와 들뢰즈의 이론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포스트 담론이 1960~70년대 변화된 자본주의 현실에서 체제 전환에 필요한 새로운 ‘이론적 무기’를 발견하려는 실천적 관심에서 등장한 것과 달리, 한국에선 담론의 도입과 정착이 서구에서 유행하는 최신 이론을 수입해 학문적 유통 마진을 챙기려는 속물적 관심에 의해 인도돼왔다는 것이다. 20년 맞아 재출간 되는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한편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양극화의 심화라는 현실 변화를 근거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포스트 담론의 다원주의를 기각하고, 다시금 낡은 경제주의로 회귀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포스트 담론의 효능과 타당성을 터무니 없이 부풀리는 것 못잖게 그것의 설득력을 부당하게 깎아내림으로써 외부 공격에 취약한 ‘이데올로기적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 역시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진보학계가 포스트주의라는 ‘괴물’과 ‘허깨비’에 맞서는 이중의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마침 절판됐던 라클라우·무페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가 1월 말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에서 재출간된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란 원래 제목도 되찾았다. 한국어 초판이 출간된 지 만 21년3개월 만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
사회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 새내기 정치가들의 열정에 힘입어 정치권도 물갈이되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의 화두가 모두 정치로 모아지고, 사회운동 지도자급 사람들이 너도나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지만, 사회의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잘난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드는 현실
그런데 파트타임 시민운동을 해온 나는 정치하겠다는 사회운동가들을 말릴 명분이 없고, 모든 일을 정권교체와 연결시키는 세상의 보통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우선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사회운동을 해서는 자신의 경력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자녀들 교육은 물론 가족의 생계조차 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익 시민단체의 돈줄이 막히고 진보적 학자들의 연구용역조차 끊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 대학, 언론, 지역사회 어느 곳도, 뜻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노력하여 그 영역에서 조직도 발전시키고 자기실현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 점에서는 그래도 기업이 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에 나서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충고는 지극히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한국사회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20여년 전 나는 노동현장조사를 하면서 노조위원장 출신들의 이후 성장통로가 마련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논문과 책에서 그것을 강조한 바 있다. 87년 울산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권용목은 고생 끝에 뉴라이트 쪽으로 갔다가 결국 일찍 사망했다. 이것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비극이다. 오늘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 저렇게 미약한 것은 앞장 선 사람들의 스펙과 헌신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20여년 민주노동운동 역사에 제대로 된 노동교육센터나 노동재단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운동 20여년에 시민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고 그들을 먹여살려줄 기관 하나 없다. 기자들은 삼성의 돈을 받아 미국연수를 가고 돌아와서는 삼성맨이 된다. 소신있는 기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민간재단 하나 없는 이 조건을 생각하면 그들을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다큐를 만들 수 있는 자질과 의욕을 가진 가난한 영화제작자를 후원해주는 기관이 없고, 학자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조사·연구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조사비를 구할 길이 없고,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있는 연구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대학원 하나 없는 현실도 그렇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좋은 거름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조건이 안되어 있으니 모든 '잘난 사람들'은 곧바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로 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간 세상을 바꾸겠다고 수많은 사회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들었건만, 오직 자기 자신만 권력자로 바꾸었을 따름이며 일부는 부나방처럼 불에 뛰어들어갔다 타죽고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에서 경륜과 식견을 쌓은 전직 운동가들은 다시 운동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비극이다. 이들을 정치로 내몰고, 정치경력을 쌓은 이후에도 다시 사회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후진성, 정치가에 대한 배반감, 양심적 인사들의 변신과 도덕적 파탄을 계속 목격해야 하며 대중의 좌절과 실망감은 계속될 것이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줄기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거름을 주는 일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저 나무에 영양제만 놓으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정치학자들은 이쁜 좋은 꽃이 꼭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사실만 강조한다.
우리사회 각계의 중견인 486세대는 언제까지 선거판에 나서는 친구들 정치자금을 대고만 말 것인가? 왜 그 부자 노조는 노동운동, 아니 자기 자식들의 미래에 그렇게 무관심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오늘의 지위를 갖게 된 대기업들은 왜 자기 회사 이미지 홍보에만 그 많은 돈을 쓰는가? 우리사회에 돈은 충분히 있다. 그 돈이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되지 않을 따름이고, 또 돈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가장 '준비된' 예비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지역이나 자신의 분야에 남아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속 발휘해주어야 하고 정치권으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그 경험을 전수해서 집단적 지혜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대다수 사회운동가들이 거름이 되지 않으면 제도정치에 나선 동료들도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익을 위해 봉사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뒷받침해주는 물적 기반이다. 우선 공직이나 대학에서 이들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내의 여러 진지들, 특히 많은 공익재단을 만들어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오직 중앙정치로만 통하는 조선시대 이래의 과도정치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계속 후진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바닥현실을 보면, 교체되더라도 그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2012.1.18 ⓒ 창비주간논평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좋은 거름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조건이 안되어 있으니 모든 '잘난 사람들'은 곧바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로 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간 세상을 바꾸겠다고 수많은 사회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들었건만, 오직 자기 자신만 권력자로 바꾸었을 따름이며 일부는 부나방처럼 불에 뛰어들어갔다 타죽고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에서 경륜과 식견을 쌓은 전직 운동가들은 다시 운동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비극이다. 이들을 정치로 내몰고, 정치경력을 쌓은 이후에도 다시 사회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후진성, 정치가에 대한 배반감, 양심적 인사들의 변신과 도덕적 파탄을 계속 목격해야 하며 대중의 좌절과 실망감은 계속될 것이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줄기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거름을 주는 일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저 나무에 영양제만 놓으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정치학자들은 이쁜 좋은 꽃이 꼭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사실만 강조한다.
우리사회 각계의 중견인 486세대는 언제까지 선거판에 나서는 친구들 정치자금을 대고만 말 것인가? 왜 그 부자 노조는 노동운동, 아니 자기 자식들의 미래에 그렇게 무관심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오늘의 지위를 갖게 된 대기업들은 왜 자기 회사 이미지 홍보에만 그 많은 돈을 쓰는가? 우리사회에 돈은 충분히 있다. 그 돈이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되지 않을 따름이고, 또 돈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가장 '준비된' 예비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지역이나 자신의 분야에 남아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속 발휘해주어야 하고 정치권으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그 경험을 전수해서 집단적 지혜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대다수 사회운동가들이 거름이 되지 않으면 제도정치에 나선 동료들도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익을 위해 봉사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뒷받침해주는 물적 기반이다. 우선 공직이나 대학에서 이들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내의 여러 진지들, 특히 많은 공익재단을 만들어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오직 중앙정치로만 통하는 조선시대 이래의 과도정치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계속 후진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바닥현실을 보면, 교체되더라도 그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2012.1.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