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2, 2010

몇가지 질문점들

Political Economy와 관련해서 몇가지 구름같은 궁금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을 잘 언어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하나는 -- production의 중심성은 얼마나?
Production / Distribution / Exchange / Consumption중

Thursday, October 21, 2010

아이러니스트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29&article_id=63017

"어떤 면에서 레닌은 리처드 로티가 말한 ‘아이러니스트’(ironist)를 닮았다. 로티에 따르면,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최종어휘에 대해 급진적이며 지속적인 회의를 갖는” 사람이다. ‘최종어휘’(final vocabulary)란 물론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세계관의 토대가 되는 믿음을 가리킨다(데리다는 이것을 ‘초월적 기표’라 부른다). 레닌에게 그 최종적 어휘란 마르크스주의, 즉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따른 사회주의의 필연성일 것이다. 레닌은 입으론 마르크스의 후계를 자처하면서도 몸으론 마르크스의 핵심적 명제에 대한 ‘급진적이며 지속적인 회의’를 실천했다. 물론 레닌은 포스트모던한 아이러니스트는 아니었다. 로티에 따르면, 아이러니스트가 되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가령 아이러니스트는 “그들의 어휘로 정식화된 논증이 이 회의를 감소시키지도, 해소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자신들의 어휘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닌은 전형적인 근대인. 그는 또 다른 논증(‘약한 고리’)으로 자신의 회의를 해소하려 했고, 나아가 자신의 어휘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현실에 더 가깝다고 확신했다. 거기에 따른 위험은 그의 사후 스탈린을 통해 현실화한다.

과거에 혁명은 진리를 소지한 전위들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외부로부터 주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의 무오류’라는 터무니없는 이론과 숙청의 드라마라는 잔혹한 실천을 낳았다. 그런 것은 한마디로 시대착오, 더이상 현대의 정치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를 바꾸려는 사람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졌어도, 그들과 내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의 믿음을 상대화해야 비로소 타인과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이 가능해야 연대도 가능하고, 연대가 가능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급진적인 것은 사태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급진적으로 되려면 무엇보다 제 뿌리로 돌아가, 제 신념의 토대를 힘껏 흔들어보아야 한다. 오늘날 사회를 바꾸는 데에 필요한 것은 확신에 가득 찬 혁명가가 아니라, 회의로 번민하는 아이러니스트다."

Saturday, October 16, 2010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사위 - 최대 3백만명 참여 추산



Gov consumption과 gov transfer는 다른 것이라니까요



spending에 포함되긴 하지만 구분해야 함.

Automation Insurance: Robots Are Replacing Middle Class Jobs

탈산업화, 제조업의 자본집약적 성격의 강화 등이
low skilled worker들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서비스 섹터로 중심 산업이 이행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자동화가 서비스섹터 잡까지 무너뜨린다는 얘기도 나왔음.

A Fine European Whine - Krugman

global unemployment-deflation chains are even more tightly connected in the time of recession


Wednesday, October 6, 2010

통계도 중요하지만

컨텍스트를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거나
아니면 기본으로 깔려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 관련 통계분석을 한다할때
social transfer나 social service관련spending으로
많이 measure하는데, 실상 서유럽의 경우 복지의
핵(social protoright)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full employment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unemployment rate를 놓고 보면
그게 올라간다고 했을때 복지비용이 증가하게
될 수 있는데, 그것만 보면 마치 복지국가가 확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상 그것의 핵심인
실업률은 올라갔는데...! 그렇다고 social transfer
measure만을 쓰는 것도 문제가 좀 있고...
이것들을 통계적 방법으로 컨트롤 할 수 있으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허탈

지난 학기에 열심히 떠들고 다녔던 working paper 주제 하나가
복지국가 확장에 있어 그 배경이 되는 social risk를 만들어내는
기제가globalization이 아니라 탈산업화 (postindustrial society,
deindustrialization)라는 거였는데...(동아시아를 케이스로 해서)

폴 피어슨(Paul Pierson)이 말한 new politics of welfare state만
잘 알고 있었더라도 이론 전개를 매우 간단히 끝내고 탄탄한
배경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는데... 이걸 오늘에서야 알았다...흠-_-;
시간낭비 노력낭비가 꽤 있었음. 학회에서 어떤 토론자는 (저 분야는
잘 모르는 경제학자였음) 저 둘을 (지구화와 탈산업화) 구분하는게
useless할 거라는 등의 커멘트를 날리고 난 좌절하고 그랬는데...
Pierson을 중심으로한 방대한 literature에
내 페이퍼를 올려놓았으면 훨씬 좋았을 것을...!

결론: 모르고 걍 덤비지 말자ㅠㅠ

Monday, October 4, 2010